108배 예찬..."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겠습니다"

2005년 새해도 벌써 두 주를 넘겼군요...
어제밤 일찍 잠자리에 든 덕분인지, 어둠 속에 깨어나보니 시계가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더군요.
잠시 멍 하니 명상에 잠겼다가, 담요를 접어 개고, 먼지 앉은 108 염주를 집어 들고, 전등을 끄고는 베란다로 통하는 제 방의 유리문을 활짝 열어 젖혔습니다.
밤새 온기로 데워진 방 안으로 싸늘하게 몰아드는 한기를 맞으며 가만히 일어서서, 한 배, 또 한 배, 손에 든 염주를 하나씩 굴려 넘기며, 천천히 백팔배를 시작합니다.
꼭 종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새벽 108배는 그 자체로 휼륭한 자기성찰의 도구입니다. 실제로 바라보고 절하는 앞 벽에는 부처님 상이 있지도 않고, 무슨 달마스님의 그림이나 불 자가 들어 있는 족자가 걸려 있지도 않습니다. 대신에 결혼식때 찍은 기념사진 중에 큼지막하게 확대해서 만든 결혼사진 액자가 하나 크게 걸려 있습니다.

무엇을 걸고 바라보며 절을 하든, 108배는 그 자체로 무엇보다도 우선 자신의 마음을 경건하게 해주고,
삶의 의미와 오늘 하루 어떤 자세로 살 것인지를 차분히 되돌아보게 해줍니다... 그런 까닭에, 작년에도 몇 차례 100일 기도 정진을 시도해 보았는데, 번번히 열흘을 채 넘기기 못하고 포기하곤 했었지요...
올해는 닭의 해인 만큼, 조금은 제 자신도 닭을 닮아 부지런한 모습으로 바꿔보자고 거듭 다짐을 하고, 그 중의 하나 작년에 못했던 108배 수행에 다시 한번 도전해보자고 작심을 했지요.
재작년에 같은 법당의 수련장에서 만났던 도반으로부터 선물로 받아놓고 푹 묵혀 두었던 108 염주를 다시 꺼내어 들고, 책꽂이 속에 묵혀 두었던 "수행일지" 노트를 다시 꺼내어 적기를 시작했습니다.
하루도 빠지지 말아야 하는 정성과 성실성이 요구되는 백일 정진은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서, 좀더 현실적으로 1년간 108배를 108번만 실행해보자는 다소 절충형 목표를 세웠습니다.
사실 조금이라도 늦게 일어나 출근시간에 쫓기다보면 절을 할 시간이 없어 빼먹게 되기 십상이고, 아침에 못하면 저녁에 하는 것 또한 쉽지가 않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느꼈거든요...
그래서, 108번은 사흘에 한 번꼴로만 채워도 달성할 수 있는 목표니까, 조금만 덜 게으르면 충분히 실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세운 목표치입니다....
목표 세우기의 기본 원칙(SMART)을 108배에 적용해 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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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체적으로 (Specific) : 자기 성찰의 한 방법으로 108배를 선택,
- 측정 가능하게 (Measurable) : 1년간 108회,
- 행동 지향적으로 (Action-Orinted) : '새벽 108배'라는 행위를 통해,
- 실현 가능성을 고려하여 (Realistic) : 3일에 한 번꼴로 실행하기,
- 마감시한을 두었으니 (Time-limited) : 2005년 12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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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는 목표의 구성 요건을 제대로 갖춘 셈이지요....
이렇게 결심은 1일날 했지만, 정작 첫 절은 3일째 들어서 겨우 시작했구요, 둘째 절은 7일이었습니다... 아무튼 한 번씩 횟수를 더해갈 때마다 수행일지의 날짜 옆에 1, 2... 따위로 횟수를 누적해서 적습니다.
지난 주는 다행히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채우는 성실함(?)을 보였더랬는데, 그만 일요일에 무너지니까 월요일도 무너지더군요...
108배를 꾸준히 하다보면 얻을 수 있는 장점은 우선 새벽에 일어날 수 있다는 것(5시 기상!), 무릎 운동은 확실히 된다는 것(가벼운 야산 산보 효과), 약간의 어깨근육 강화 효과도 있다는 것 등이 신체적인 효과라고 볼 수 있고요...
무엇보다도 마음의 다스림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관조해볼 수 있는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더 좋습니다.
여든 배나 아흔 배쯤 하면 약간은 얼굴에 혈기가 오르고 호흡이 조금은 가빠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이 때쯤이면 아! 오늘도 빠뜨리지 않고 채웠구나 하는 느낌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는 시점입니다.
명상의 묘미가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 하지만, 실상 범인들이 절을 하건 좌선을 하건 끊임없이 떠오르는 상념과 잡념을 떨어내기란 쉽지가 않지요...
해서 마치 주문이나 염불을 외듯, 자신만의 "화두"랄까 "기도문"을 가지고 임하는데요... 제가 절을 하면 반복해서 외는 기도문은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겠습니다." 이지요...
딴 생각이나 잡념이 떠오르면 의식적으로 이 말을 읊지요... 그러다보면 어제 하루 또 오늘을 좀더 겸손하게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또 말만 앞세우고 실천하지 못한 일은 없는지, 누군가에게 칭찬 대신 험담을 하거나 비난하고 비판하여 마음에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따위를 곰곰히 생각해보게 됩니다.
언젠가 그런 기도문 자체가 필요 없을 만큼, 그야말로 무의식적으로도 내면에 체화될 때까지 끊임없이 정진하자고 또 한번 각오해 봅니다. 올해 108배, 108번 꼭 채우고 제 자신의 마음 그릇을 조금이나마 넓혀보고자 오늘도 절을 올리고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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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때로 | 2005/01/18 11:40 | 이멜과 편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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